빌보드 암호로 억만장자 경쟁 뚫다: 리슨 랩스, AI로 시장조사의 새 지평 열다

샌프란시스코의 빌보드에 숫자 다섯 줄이 무의미하게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암호 같은 숫자는 다름 아닌 AI 토큰이었고, 이를 해독하면 베를린의 악명 높은 클럽 ‘베르그하인’의 디지털 바운서를 만드는 코딩 챌린지로 연결되었습니다. 경쟁사는 마크 저커버그의 1억 달러 제안이었지만, 리슨 랩스(Listen Labs)는 마케팅 예산의 5분의 1인 단 5천 달러로 이 기상천외한 채용 공고를 냈습니다. 그 결과, 수천 명이 퍼즐에 도전했고 430명이 이를 풀어냈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리슨 랩스에 합류했습니다. 이 파격적인 접근 방식은 이제 6,9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 B 투자 유치로 이어지며, 리슨 랩스를 5억 달러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AI가 파헤친 시장조사의 ‘더러운 비밀’

리슨 랩스의 성공은 단순히 독특한 채용 방식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AI를 활용하여 1,4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조사 산업이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기존 시장조사는 통계적 정확성은 높지만 미묘한 뉘앙스를 놓치는 정량 조사(설문조사)와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지만 확장성이 떨어지는 정성 조사(1:1 인터뷰)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창업자 알프레드 발포스(Alfred Wahlforss)는 설문조사에 대해 “사람들이 정직하지 않아 부정확한 결과를 제공한다”고 지적했고, 1:1 인터뷰에 대해서는 “깊이는 있지만 확장할 수 없다”는 한계를 토로했습니다.

리슨 랩스는 AI 연구원이 3천만 명 규모의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참가자를 모집하고, AI 모더레이터가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며, 결과는 핵심 테마와 하이라이트 영상이 포함된 보고서로 제공됩니다. 특히, 객관식 질문 대신 개방형 영상 대화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발포스는 “설문조사에서는 사람들이 답을 추측하여 선택할 수 있지만, 개방형 질문은 훨씬 더 솔직한 답변을 이끌어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개선을 넘어, 데이터 수집의 본질적인 신뢰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리는 접근 방식입니다.

‘품질 수호대’가 지켜내는 진짜 고객 인사이트

시장조사 업계의 가장 충격적인 ‘더러운 비밀’ 중 하나는 만연한 사기(fraud)입니다. 금전적 보상이 오가는 구조이다 보니, 정직하지 못한 참가자들이 넘쳐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발포스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대기업들조차 우리 플랫폼에 기업 구매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보냈지만, 우리 시스템은 즉시 사기를 감지했다”고 밝혔습니다. 리슨 랩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품질 수호대(quality guard)’라는 독자적인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링크드인 프로필과 영상 답변을 교차 검증하여 신원을 확인하고, 답변의 일관성을 점검하며, 의심스러운 패턴을 포착합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발포스에 따르면, 이 시스템을 거친 참가자들은 “세 배 더 많이 이야기하고, 정치나 정신 건강과 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도 훨씬 더 정직하게 말한다”고 합니다. 이는 AI가 단순한 효율성을 넘어, 인간의 본질적인 솔직함과 깊은 통찰력을 이끌어내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부정직한 데이터가 횡행하는 시대에, 리슨 랩스는 AI를 통해 ‘진짜’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에디터의 시선

리슨 랩스의 성공 스토리는 현대 IT 스타트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첫째, 경쟁이 치열한 인재 시장에서 ‘창의적인 파괴’가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빌보드의 숫자 암호는 단순히 비용 효율적인 채용 방식이 아니라, 리슨 랩스가 추구하는 기술적 깊이와 문제 해결 능력을 암시하며 최고의 인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이는 틀에 박힌 채용 공고로는 더 이상 최고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시사점을 던집니다.

둘째, AI가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인간이 미처 도달하지 못했던 ‘진실성’과 ‘깊이’를 발굴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시장조사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사기와 피상적인 답변은 AI 기반의 정교한 검증과 개방형 인터뷰를 통해 극복되었습니다. 이는 앞으로 AI가 단순 반복 업무뿐만 아니라, 통찰력과 윤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예고합니다.

마지막으로, 발포스의 “고객에게 집착하면 모든 것이 따라온다”는 철학은 기술 혁신의 궁극적인 목적을 상기시킵니다. 리슨 랩스는 고객의 진짜 목소리를 듣기 위해 기술을 활용했고, 그 결과 고객들은 더 솔직해지고 기업은 더 정확한 인사이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AI 시대의 성공적인 기업은 기술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고객 중심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리슨 랩스는 바로 그러한 미래 기업의 청사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